경청
성경말씀
베드로가 아직 말을 하고 있을 때, 보라,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휘덮었다.
또, 보라,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는 사랑하는 내 아들이다. 나는 그가 좋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제자들이 듣고서 납작 엎드렸다.
그들은 너무나 두려웠다.
그러자 예수님이 다가가셔서 그들을 어루만져 주시고는 말씀하셨다.
“일어나요. 두려워하지 말아요.”
그들이 눈을 들어 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예수님뿐이었다. (마태복음 17장 5-8절)
묵상
영성적 경청은 ‘나를 잊고 대상에 몰입해서 바라보는 사랑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진정한 경청은 자아에 집중하게 하는 수많은 다른 소리를 보냄으로써 가능해집니다.
이 경청의 가장 중심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예수님과 사랑하는 세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산 위에 올라갔습니다.
일상의 일들을 잠시 잊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산에 올라갔더니 온몸에 생명의 빛이 넘쳐서 하얗게 변화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조명의 빛을 받은 상태가 된 것이지요.
이때 베드로는 일종의 황홀경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 황홀경은 어떤 자연적 신비가 아닙니다.
말씀에 대한 경청으로 이루어진 황홀경입니다.
성경은 말씀이 들리기 전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었다고 증언합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알고, 경험한 것으로 가득 찬 의식 세계를 무지의 구름이 덮었습니다.
이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황홀한 상태에서 멈추어 서는 게 아니라 무지의 구름 사이로 들려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에 이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라.”
영성적 경청의 목적, 산 위에 올라간 목적은 바로 하나님이 사랑하고 기뻐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데 있습니다.
이 산 위의 말씀이 우리의 기도와 삶 가운데 들려야 합니다.
이 말씀을 듣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커다란 야심이 아닙니다.
세밀한 계획이 아닙니다.
명철한 논리에 입각한 추론이 아닙니다.
그저 예수님과 동행하며 자기 위에 무지의 구름을 둘 수 있는 겸손한 마음뿐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길을 따라 올라가 무지의 구름 사이로 들리는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삶은 새로운 차원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전에 알았던 모습을 넘어서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세 제자들이 그랬듯이 모든 황홀경이 사라진 자리에는 주님만이 계십니다.
이제 남은 일은 주님과 함께 세상 한가운데로 다시 내려가는 것입니다.
사막교부와 함께하는 묵상
말씀을 이해하려면 모른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자신이 그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지를 항상 살핀 다음에 말하라.
- 알세니우스
기도
주님,
저의 생각과 경험 위에 당신의 구름을 덮어주소서.
겸손하게 당신의 말씀을 경청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