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성경말씀
입을 지키는 사람은 자기 몸을 지키지만,
입술을 여는 사람은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잠언 13장 3절)
묵상
하나님은 말씀입니다.
다석 유영모에 의하면 우주에 가득한 ‘말숨’입니다.
우주 안에 하나 가득, 말숨을 풀어놓으니, 그것이 제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빛이 되고 해가 솟아나고 이슬을 내리고 생명의 꽃을 피웠습니다.
본디 말숨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연결합니다.
말숨은 표상으로 된 말만으로는 온전히 담아낼 수 없습니다.
이 말숨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침묵입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단언이나,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함께’라는 본회퍼의 말처럼 ‘말숨 앞에 말 없는’침묵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막교부들은 그 말숨을 듣기 위해 사람의 말을 피하여 사막으로 갔습니다.
황량한 사막의 침묵, 심연의 동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수도사 토마스 머튼은 <침묵 속에 만남>에서 고백합니다.
“신의 말씀은 느닷없이 설명할 길 없는 모양만으로, 스스로를 커다란 능력을 지닌 말로, 곧 완전한 하나님의 음성인 말로 드러내는 침묵 자체로서 들려옵니다. …
당신의 밝음은 저의 어둠입니다.
저는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저 혼자서는 당신을 알기 위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
제가 당신을 안다고 의식하고 확신한다면 저는 미친 것입니다.
저는 어둠만으로 족합니다.”
고착된 내 말이 해체되고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가 그 빛을 발견할 때, 말의 감옥 안에 갇혀있던 말숨이 비로소 터져 나옵니다.
나를 버려서 말숨이 터지고 풀려 나와 뛰어다니게 하십시오.
소경이 눈을 뜨고, 귀신이 축출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서 걷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말은 존재의 집이 됩니다.
그 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나라를 이룹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르렀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 안에, 말숨으로 계십니다.
사막교부와 함께하는 묵상
어떤 자는 겉으로 침묵하는 척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다른 자들을 정죄한다.
그런 자는 끊임없이 지껄이는 것이다.
반면 어떤 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하지만 침묵을 지킨다.
유익하지 않은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 까닭이다.
- 포이멘
기도
주님,
인간이 만든 언어의 감옥, 굳어버린 생각의 틀에서 해방시켜주소서.
나의 입술을 닫고 당신의 말숨이 온전히 살아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