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성경말씀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 16장 32절)
묵상
분노는 잘못 다스리면 상대방은 물론이고 자신과 공동체까지 파괴할 수 있는 양가적인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치 성냥개비와 같아서 적절한 시간에 불을 붙이면 온기를 주고 음식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소중한 것들을 불태울 수도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합니다.
“누구든지 분노할 수 있다. 이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올바른 정도로 가장 적절한 때에, 올바른 목적과 방법으로 분을 내는 일은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쉬운 일도 아니다.”
모세는 적절한 분노와 적절치 못한 분노에 대한 좋은 예를 보여줍니다.
그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를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분노했고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렸습니다.
이때 모세의 분노는 하나님께 합당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뜻과 감정에 이끌려 바위를 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짜증을 담아 약간의 화를 냈을 때 그는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그 분노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기 의와 오만에 의해 생긴 분노였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경우 외에도 성경은 끊임없이 적절한 분노와 적절치 못한 분노의 예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가인은 거절감과 인정받지 못한 것에 분노해 자신의 동생을 쳐 죽였습니다.
타락한 예루살렘 성전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분노하시며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의 의자를 뒤엎으셨습니다.
전자가 죄가 되는 분노라면 후자는 거룩한 분노입니다.
거룩한 분노가 죄에 저항하며 이를 변모시킨다면 죄가 되는 분노는 악한 세상에 또 다른 죄를 더합니다.
거룩한 분노가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인도를 받아 움직인다면 죄가 되는 분노는 사단의 조종을 받아 움직입니다.
즉, 그리스도와 자신이 일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하는 분노야말로 죄가 되는 분노입니다.
이 죄가 되는 분노는‘자아 중심적 뜻과 감정’을 다스리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그러니 거룩한 분노를 얻기 위해서, 세상을 바꾸기 전에 먼저 자신의 판단, 감정, 의지를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도록 훈련하십시오.
사막교부와 함께하는 묵상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은 설령 그가 죽은 자를 살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받아주시지 않는다.
- 아가톤
기도
주님,
분노의 상황에서 잠시 멈출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소서.
제 자신의 영혼을 먼저 살필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주소서.
하나님 안에서 마땅히 분노해야 할 일을 피하지 않는 용기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