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다림의 끝날
성경말씀
한나라는 예언자가 있었는데, 파누엘의 딸로, 아셀 지파 사람이었다.
나이가 많이 들었는데, 결혼하고 7년이 지나 남편이 죽었다.
남편을 여의고서 84세에 이르렀다.
그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하며 매달려 기도했다.
밤이든 낮이든 예배가 있으면 참석하곤 했다.
바로 그 시간에 한나가 다가와서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풀어 주시기를 바라면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아기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주님의 율법에 맞추어 모든 일을 끝내고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자기들의 도시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누가복음 2장 36-39절)
묵상
때로, 숨어계신 하나님은 기다림의 끝에 이르러서야 만날 수 있습니다.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인 안나 선지자 역시 오랜 시간 기다렸습니다.
과부가 된 후로 팔십 사 년을 더 살았다 하니 100세 이상 되었을 무렵에야 그분을 만나 뵈었던 것이지요.
이를 위해 그녀가 오랜 기간 한 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성전에 꾸준히 가는 것과 기도하는 것, 이 두 가지였습니다.
이 두 가지를 하며 그녀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직도 얼굴을 드러내시지 않는 하나님의 아들을 기다리는 것.
그 기다림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한 것이었습니다”(시 130:6).
‛마침 이때에 나아와서’ 그 기다림의 끝에 안나 선지자는 성전에서 할례받는 주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 하심을 따라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비로소 우리는 그분의 얼굴을 만납니다.
그 기다림도 역시 온전함으로 이끄는 은총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온전함이란 없습니다.
온전함을 지향할 수는 있겠지만 자신이 온전함 자체인 그분이라도 된 양 온전함을 끌어올 수는 없습니다.
갈보리 십자가 언덕을 오를 힘도 없습니다.
오랜 시간의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 우리가 아는 것은‘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언가 다른 것이 와야 합니다.
일어나야만 합니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비록 조금 부족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고 사랑하며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기다림의 끝날,
마치 꿈과도 같이 하나님이 오셔서 당신의 얼굴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오래된 꿈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안나를 좇아, 기다리다 지쳐 죽어버린 관계와 꿈들을 다시 살리십시오.
그리고 명령하십시오.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때가 되었으니, 나사로야 나오너라.
죽은 지 오래되어 아무도 희망을 걸지 않은 소망,
오랜 기도들과 희망들아. 때가 찼으니 나오너라.
칠십 년 포로생활로 이젠 막혀버린 꿈들, 때가 되었으니 일어나라.”
우리의 힘은 그분이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온전히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막교부와 함께하는 묵상
형제들이여, 어서 와서 진리에 순종합시다.
이곳에는 겸손이 있고 힘이 있으며, 기쁨이 있고 인내가 있으며, 형제애가 있고 오래 참음이 있으며, 사랑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랑을 가진 자에게서 하나님의 모든 계명들이 이루어집니다.
- 모세
기도
주님,
당신의 얼굴 뵙기를 소망합니다.
이미 사라진 어릴 적 꿈이 생각나게 하시고,
포기한 소망들이 되살아나게 하소서.
저의 기억을 새롭게 구성하시고 삶을 새롭게 창조하소서.